몬트리올 한인회,
광복절 체육대회의 새로운 장 열어
●제72회 광복절 기념 체육대회, 400여 명 참석 성공
●‘가을 운동회’ 형식의 다양한 놀이로 세대간 소통 이뤄
●공원에 펼쳐진 대형 태극기, 한민족(韓民族)의자긍심 키워
2017년 9월 23일 토요일은 몬트리올 한인 동포들에게 ‘아주 특별한 날’이었다.
이날 햄스테드 공원에 모인 사람들은 인종과 나이, 성별을 떠나 모두 하나가 됐다. 말이 잘 통하지 않아도 어른이나 아이 할 것 없이 ‘스포츠’를 통해 모두 함께 즐길 수 있다는 것이 증명된 것이다.
제72회 광복절 체육대회는 늦어진 일정 탓에 기존의 형식을 벗어난 행사로서 한인회 이사진과 한인들의 많은 걱정 속에서 준비됐다. 사실 촉박한 일정 탓도 있지만, 무엇보다 이전에 시도된 적이 없던 ‘가을 운동회’ 형식으로 행사를 치른다는 것 때문에 동포들 사이에서는 회의적인 시각이 더 많았다.
하지만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했던가. 한인회를 중심으로 40명에 가까운 자원봉사자들이 똘똘 뭉쳐 온 힘을 다한 끝에 두 개 교회만 공식적으로 참여했음에도 400여 명의 한인과 비한인이 함께 뛰고 웃고 즐기는 ‘획기적인 성과’를 일구어낸 것이다. 이전 광복절 체육행사보다는 적은 인원이었지만 광복절 기념식을 이미 치른 상태였고 대부분의 종교단체가 불참한 상태에서 유모차 탄 갓난아이부터 80대 고령 어르신까지 모여 함께 일구어낸 값진 성과라 더 주목된다.
2017년 광복절 기념 체육대회는 오전 10시 경 개회식과 함께 시작됐다. 사회자로 나선 김종민 경제부 이사는 “오늘 이 체육대회에 참석해 주신 한인 동포 가족 그리고 현지인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며 “사실 한인회가 출범하자마자 처음 준비하는 큰 행사라 걱정과 심적 부담이 상당했는데 이렇게 많은 인원이 참석해주셔서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이어서 인사말에 나선 김영권 한인회장은 “체육대회에 오신 한인과 비한인 모든 분을 환영한다”며 “몬트리올 한인회가 정성껏 준비한 다양한 프로그램에 참여해서 가을 하루를 마음껏 즐기시기 바란다”고 3개 국어로 짧게 말했다. 확실한 의사 전달을 위해 간략히 한 발언이었지만 그의 말 속에는 ‘오늘의 체육대회를 통해 그동안 쌓인 스트레스를 모두 날려버리고 앞으로 서로 돕고 소통하는 한인사회를 함께 만들어 가자’라는 한인들을 향한 강력한 메시지가 담겨 있었다.
이어진 허 진 주몬트리올 총영사 겸 ICAO 대사의 축사에서는 “오늘 한인회가 어렵게 준비한 체육대회 행사에 참여해주신 동포 여러분께 감사드린다”며 “보통 9월 말이면 쌀쌀한 날씨 때문에 행사 진행이 어려울 수밖에 없는데 오늘 더할 나위 없이 날씨가 좋아 체육대회가 성공할 것 같다”고 간단명료하게 말했다. 허 대사는 부임 이래 매년 축구와 족구 경기에도 직접 참여하는 등 스포츠에 아주 적극인 모습이다. 아울러 허 대사는 동포사회의 각종 문화 행사 등에도 많은 관심을 보여온 것으로 알려졌다. 김영권 회장은 행사 도중 임원들과의 대화에서 “매년 공관의 전 직원이 체육대회에 참여해 교민과 소통하고 직원 간에 단합하는 기회로도 삼는 총영사관의 모습이 참 보기에 좋고 교민들에게 귀감이 되고 있다”며 족구경기 후 앉아 있는 허 대사와 공관 직원들에게 직접 사비를 털어 냉커피를 대접하기도 했다.
이번 체육대회의 가장 큰 특징은 기존의 구기 종목은 그대로 유지하면서 ‘가을 운동회’라는 새로운 컨셉을 접목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체육대회 준비 당시 종교단체의 참여가 저조한 상황을 고민하던 중 최웅기 스포츠부 이사의 조언을 김 회장이 전격적으로 수용한 것이 ‘가을 운동회’ 아이디어다. 이 안은 기존의 체육대회 틀을 유지하되 가족 단위가 많은 몬트리올 한인사회의 특성을 고려할 때 온 가족이 참여하고 즐길 수 있다는 측면에서 이사회 임원들의 즉각적인 찬성 의견을 끌어냈다. 즉, 놀이프로그램을 체육대회에 접목한 것은 발전적이면서 의미있는 변화를 시도했다는 것이다.
오전에 집중된 놀이 프로그램은 한국의 운동회같이 가족이 함께 참여할 수 있는 종목으로 구성됐다. 2인 3각, 부모와 자녀 이어달리기, 부모와 자녀 줄넘기, 과자 따오기, 림보, 신발 날리기, 럭비공 드리블, 탁구공 이어 옮기기, 바구니에 공 넣기, 팔씨름, 박 터트리기 등 총 열 한가지 놀이를 공원 중앙에 배치해 아이와 부모들이 넓은 축구장에서 마음껏 뛰고 즐기도록 배려했다. 반면에 65세 이상의 노년층은 안전을 염려해 본부석 뒷공간에서 별도의 시니어용 놀이를 마련했다. 상품도 어린이용 학용품과 시니어용 건강식품으로 구분했다.
놀이 프로그램의 도입은 행사 직후 실시한 체육대회 결과 설문조사에서 ‘신의 한 수’라고 할 정도로 성공적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과거의 체육행사가 구기종목 위주의 진행으로 참여가 다소 제한적이었다면 놀이 프로그램은 행사에 참여한 남녀노소 누구나 즐길 수 있어 체육대회를 더욱 풍성하게 만들었다’는 것이 응답자들의 중론이다.
점심시간은 중앙에 마련한 ‘두 개의 대형 박’을 아이들이 터트리면서 시작이 됐다. 박이 터지면서 쏟아져 나온 초콜릿에 아이들의 환성이 터졌고 박 속에 감겨 있던 ‘야! 점심시간이다’라는 배너를 신호로 점심을 즐겼다.
점심시간 이후 진행된 ‘OX 퀴즈퀴즈!’도 이전에는 없었던 새로운 시도이자 볼거리였다.
이 날 행사의 총 진행을 맡은 김종민 이사의 재치있는 질문에 한인 동포들뿐만 아니라 외국인 친구들까지 한국말을 번역하며 OX 공간을 분주히 움직였다. 이날 퀴즈에 남은 최후의 1인인 최미경 씨에게는 퀴즈 우승컵과 함께 부상으로 태블릿 PC가 수여됐다.
이번 체육대회를 돋보이게 한 또 하나의 특징은 한인회가 햄스테드 공원 언덕에 펼쳐 놓은 ‘가로 30미터 길이의 태극기’다. 이 초대형 태극기는 행사에 참여한 외국인들에게는 대한민에 대한 좋은 이미지를 심어주고 한인 2세들에게는 한국인으로서 자긍심을 심어주는 계기가 되기에 충분했다. 이번 행사에 처음 참여한다는 한인 2세 김모양(12)은 “어릴 때 한국에서 건너와 캐나다 친구들과 계속 어울리다 보니 한국인이라는 것을 잊고 살 때가 많았다”며 “오늘 엄마의 반강제적인 권유로 한인 행사에 처음 참석했는데 공원에 펼쳐진 대형 태극기를 보면서 국기에 경례를 할 때 내가 ‘한국인’이라는 생각에 가슴이 뭉클해졌다”고 말했다. 김 회장은 “이 초대형 태극기는 내가 부회장이었던 2007년 당시 몬트리올에서 개최된 U-20 세계 청소년 축구대회 응원을 준비하던 27대 한인회(회장: 노재일)의 퀼트반 수강생들이 제작한 것”이라며 “당시 한인회에서 개설한 ‘코코모 문화강좌(후일 한인회 문화강좌)’ 강사 최경원씨와 수강생들이 생각난다”며 잠시 감회에 젖기도 했다. 아울러 김회장은 “10년 동안 손상 없이 보관해 온 김광인 직전 회장 등 전임 한인회 임원진에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이번 체육대회가 다른 행사와 달랐던 또 하나의 차이가 있다면 ‘자원봉사자’들의 헌신적인 참여였다. 사실 한인회가 50장의 스태프용 티셔츠를 주문해 놓고 처음 자원봉사자를 모집할 때도 과연 지원자가 있을까 하는 반신반의하는 분위기가 많았다. 하지만 막상 모집공고가 나가니 지원자가 하나둘 늘어나 급기야 예상을 훨씬 뛰어넘은 40여 명의 자원봉사자가 모인 것이다. 만약 자원봉사자들의 참여가 없었다면 체육대회 행사 자체가 불가능할 정도로 순간마다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했다. 게다가 여러 가지 소품이 필요한 놀이 프로그램에서 이들의 활약은 절대적이었다. 한인회는 이번 행사에 참가한 모든 봉사자에게 ‘자원봉사 증명서’를 발급할 예정이다.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응급실 근무 경력이 있는 전직 간호사 두 명이 자원봉사로 상시 대기한 것도 주목되는 부분이다.
한편, 체육대회에 참여한 단체는 가나다한국어학교, 한얼한국어학교, 스노우던교회, 한인감리교회, 영조태권도, 모나미였고, 전체 참가자의 절반 이상이 가족 단위였다. 한인회의 체육대회 광고를 보고 시내에서 왔다는 한 가족 참가자는 “작년에도 체육대회에 참석했는데 이번 행사가 더 알차고 재미있는 것 같다”며 “이전에는 점심을 교회마다 제공돼 교회를 다니지 않는 사람은 부담스러운 경우가 있었는데, 이번에는 돈을 조금 내더라도 사 먹을 수 있어 오히려 마음이 편하다”고 말했다. 한인회가 총 500인분을 준비한 점심 메뉴는 ‘우엉 김밥’과 ‘미소 스프’였다. 12세 이하 어린이에게는 무료로 제공되었고 13세 이상에게는 5불에 판매 됐는데, 공원에 산책 나온 현지인에게도 인기가 있어 구매가 가능한지 문의가 있을 정도였다.
이번 체육대회에는 비한인의 참여도 많았다. 구기 종목 중 축구 경기에 참가신청을 한 FC 모나미팀은 팀 구성원의 절반 이상이 비한인이었다. 하지만 애초 기대한 만큼의 한인 입양아 가족은 눈에 많이 띄지 않았다. 아마도 촉박한 일정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 한인회는 체육행사 등에 비한인의 참여를 제한하지 않을 방침이다. 32대 한인회의 비전이 ‘주류사회화(Integration)’임을 굳이 거론하지 않더라도, 세계화 돼 있는 시대적 조류에 편승하는 것은 순리이기 때문이다. 또한, 체육대회는 비한인들에게 ‘한국 문화’를 홍보할 기회도 되기 때문에 한국식당 등 동포 업체의 사업지원 차원에서도 긍정적인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나친 승부욕에 집착해 아마추어가 아닌 용병(?)을 참여시키는 단체가 있을 경우 이는 페어플레이 정신에 어긋나기 때문에 철저히 제한키로 했다. 체육대회는 말 그대로 ‘친목대회’인 만큼 행사의 취지와 목적이 지켜져야 할 것이다.
체육대회 결과는 축구의 경우 FC 모나미팀이 우승했다. 남자 족구와 여자 발야구는감리교회팀이 우승했고, 배구는 영조태권도팀이 최종 승리했다.
이 날 체육대회는 종목별 우승 시상과 행운 경품 추첨을 마지막으로 종료됐다.
다양한 경품도 이번 체육대회의 주요 특징 중 하나인데, 대형 TV 2대를 비롯해 태블릿 PC, 라면과 쌀, 각종 주방용품 및 학용품 등 상품이 참가자들에게 지급됐다. 아마도 이날 참여한 거의 모든 사람에게 하나씩은 돌아가지 않았나 싶을 정도로 푸짐했다. 이런 상품과 경품은 여러 동포단체와 업체 덕분에 마련할 수가 있었는데 체육대회를 후원하고 수고해 주신 분들의 명단은 행사결산서와 함께 다음 주에 취합해 공고할 계획이다.
한편, 몬트리올 한인회는 내년 제73회 광복절기념 체육대회의 개최를 이미 약속했다. 폐회식을 하면서 김 회장은 “내년 체육대회는 2018년 8월 18일에 개최할 것”을 선언했다. 이를 위해, 한인회는 설문지를 통해 동포 여러분의 의견을 듣고 반영해서 내년 행사에 반영할 예정이다.
파란만장한 역사를 가진 한국인들에게는 ‘광복절’이 특별한 의미를 가질 수밖에 없다. 더구나 이 ‘광복절’을 조국이 아닌 타국에서 맞게 된다면 그것 또한 남다른 의미로 다가올 것이다. 내년에는 더 많은 가족이 함께 참여해 모두의 추억에 남는 ‘의미 있는 광복절’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32대 한인회 미디어팀]